유승민 불출마

유승민 딸 유담 근황

 

 

유승민 의원이 출마하지 않는다고 하죠.

이언주 대표가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보수대통합이 절실한 한편 유승민 등에 대한 내부 비토가 극심한 상황에서 새보당이 합류를 안 해도, 합류하고 유 의원이 출마를 고집해도 보수는 분열되는 상황이었다"며 이같이 언급했는데요.

 

 

이 대표는 중도·보수통합 논의기구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의 통합신당준비위원회에서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고 하죠.

 

그는 "이전부터 주장해 왔지만 유 의원의 불출마 만이 그러한 딜레마적 상황을 해소할 유일한 방안이었다"며 "유승민의 결단을 다시한번 환영하며 보수의 혁신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 "이제 우리는 모두 똘똘 뭉쳐서 국민들과 함께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막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지켜낼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앞서 유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과의 신설합당 추진을 발표하고,
21대 총선 불출마도 선언했습니다.

 

 

유 의원은 "합당 결심을 하면서 저는 오직 한가지, 국민의 뜻만 생각했다. 대한민국을 거덜내고 있는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막기 위해 보수는 합치라는 국민의 명령을 따르겠다"이야기하였는데요.

"보수가 힘을 합치고 다시 태어나 총선과 대선에서 권력을 교체하고 대한민국을 망국의 위기로부터
구해내라는 국민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건 저 자신을 내려놓는 것 뿐이다. 보수가 힘을 합치라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지만,
그와 동시에 개혁보수를 향한 저의 진심을 남기기 위해 오늘 저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다"며 "보수가 힘을 합쳐서 개혁보수를 향해 나아가는 데, 저의 불출마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지난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유수호와 어머니 강옥성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였죠.

 

 

2000년 2월에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있다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으로 한나라당의 정책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정치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20대 총선까지 내리 4선에 성공했습니다. 20대 국회 기준으로 지역구는 대구 동구(을)입니다.

 

 

박근혜와는 2005년 1월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것을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으며, 같은 해 10월까지 10개월간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었습니다.

2007년에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며 원조 친박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겪으면서 완전히 사이가 멀어졌고,
이때부터 소위 "탈박"이라는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된다. 저 당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중 대표적인 예로, 박근혜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려고 하자 유승민이 "새누리당은 당명으로 쓰기엔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짙은 이름이다"라는 이유로 정면으로 반대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 뒤로는 소위 탈박 내지 비박계 인사로 분류되었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로도 박근혜정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청와대와 여러 차례 충돌을 벌이다가, 2015년 7월 원내대표 당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특히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15년 4월에 있었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로 대표되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였다. 그 연설 이후, 박근혜로부터 이른바 '찍박'으로 낙인찍히고, 수많은 친박 의원들의 반대로 인해 결국 원내대표직 사퇴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그때의 불씨가 화약고나 다름없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문제를 놓고 대폭발하여, 자신이 친박계와 비박계 간 대립의 정점에 올라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상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범여권 진영의 열쇠였죠.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하여 당내에서 꾸준히 당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당의 진로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하다가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2017년초 탈당하고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했습니다.

 

 

현재는 대선주자로도 뛰는 등 바른정당의 간판으로 활동 중이며, 2017년 11월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제3대 바른정당 대표가 되었습니다.

탈당 러쉬로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바른정당을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통해 바른미래당으로 탈바꿈시키며 30석을 가진 원내교섭단체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분열 사태를 맞은 국민의당과 대표직을 내려놓은 안철수와 달리 당내 입지의 변화 없이 합당을 마무리했으며, 바른미래당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자신만의 정치 세력도 갖춰가고 있었으나 결국 7대 지선 참패로 바른미래당 대표에서 사퇴했습니다.

 

 

바로 이번주 금요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종로 출마에 표를 던졌는데요.
이에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자유한국당과 신설합당을 추진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보수가 합쳐진다면 황교안에게 힘이 더 될 수도 있다고 보이는데요.
그리고 유승민은 총선에 불출마를 한다고 했습니다.

 


유승민은 1958년생으로 만 62세이죠
키 173cm에 몸무게 69kg입니다.
그는 삼덕초, 대륜중,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 학사,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를 땄습니다.